[Korea] 2023 BIFF

2023. 10. 12. 01:07Life/Korea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가기로 결심했다. 스무살이 된 이후로 매년 가고 싶었지만, 대학생한테 10월은 매우 바쁜 달이라 매번 못 가다가 올해 10월은 여유로워서 갈 수 있었다. 원래는 친구들을 모아서 같이 갈 계획이었는데, 확인해보니 온라인 예매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일정 잡고 숙소 잡고 하면 늦어질 거 같아 혼자 10/6 ~ 10/7 1박 2일로 가기로 했다. 친구들이랑 가면 영화를 보고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사진을 왕창 찍을 수 있어서 좋지만, 또 혼자 가면 영화의 여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고 멋대로 돌아다닐 수 있기 때문에 좋다. 취소표를 구하느라 영화제 카페를 가입했었는데, 언젠가 영화인들과 같이 보러가도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영화제 일정과 상영표는 부국제 사이트에 들어가서 '상영시간표'를 눌러 확인할 수 있었다. 보고자 하는 영화의 스케줄코드를 확인했다.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4-13 October, 2023

www.biff.kr

 

온라인 예매날에는 아래 사이트에서 스케줄코드를 입력하여 예매했다.

http://ticket.biff.kr/PC/Kr/reserve.aspx

 

이렇게 세 개의 작품을 보게 됐다. 원래 보고 싶은 작품이 더 있었는데 정말 순식간에 매진이 됐다. 세 번째 작품은 취소표로 겨우 잡았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신작도 궁금했고, 최근에 <무빙>을 너무 재밌게 봐서 한효주 배우의 액터스 하우스를 가고 싶었는데 당일까지 취소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기차 시간도 있고 이 날 밤에 한일 축구 결승전이 있기도 해서 마음을 접었다. 다음엔 열 편 넘게 보고 와야 후회가 없을 거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7시에 부산행 기차를 탔다. 전날 챙긴 샤인머스캣을 먹으면서 갔다. 전날 너무 늦게 자서 기차 안에서 자려고 했는데 왠지 자기 싫어서 사부작거리다가 결국 한숨도 못 자고 부산역에 도착했다. 살면서 부산을 딱 한 번 가봤는데, 그때는 비행기를 타고 갔어서 부산역은 처음으로 와보는 것이었다.

 

 

 

내 일정은 이 두 곳을 왔다갔다 하는 일정이었다.

영화제의 묘미는 영화 한 편 보고 끼니 때우고 다음 영화 보러 뛰어다니고 하는 것!

 

 

영화의 전당과 야외극장에서 본 모습들

 

 

 

하늘연극장으로 들어가서 안내 데스크 앞에 있는 팜플렛들을 챙겼다. 1층에 카페가 있어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사실 뚱뚱한 샌드위치는 먹기가 힘들어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샌드위치만큼 점심으로 먹기에 좋은 것이 없어서 나름 잘 먹었다. 그리고 건물 6층으로 올라가서 티켓을 발급받았다. 사실 온라인으로 예매 내역 보여주면 되지만 간직해두고 싶어서 따로 뽑았다! (지구야 미안해.. 분리수거 잘할게...)

 

 

 

첫 번째 영화는 셀린 송 감독의 <패스트 라이브즈> 였다. Past Lives, 즉 전생을 말한다. 셀린 송은 브로드웨이에서 극을 쓰는 사람인데,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바탕으로 첫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에 어쩌다보니 이번에 로맨스를 두 편이나 보게 됐는데, 원래 로맨스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또 로맨스가 괜찮은 거 같다. 다만  마냥 달달하지 않고 <결혼 이야기>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처럼 설렘 외의 감정을 줄 수 있는 로맨스 영화가 좋은 거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내게 좋은 영화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내가 서울과 뉴욕을 둘다 사랑해서 눈이 즐거웠고, 뉴욕이 나올 때는 예전 생각이 나서 더 좋기도 했다. 영화에서 둘은 세 번의 헤어짐을 갖는다. 마지막 헤어짐에선 두 사람이 영화 내내 말하던 키워드인 '생'을 언급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그 때 보자'고 말하며 최종적으로 헤어지게 된다. 덤덤하게 이번 생에서의 이별을 고하는 모습에 약간 북받쳐 올랐다.

 

상영이 끝나고 GV를 진행했는데 영화만큼이나, 어쩌면 영화보다 더 좋았다. 특히 유태오 배우가 클로징 멘트로 한 말이 엄청 와닿았다.

우리가 어떤 입장에서는 사랑을 많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안에서 누가 나쁘다, 좋다라는 게 없는 거 같아요. 사랑이라는 게 정의로운 게 없는 거 같아요.
그게 그냥 인생이고, 그게 그냥 삶이에요. 그건 그냥 이해하고 같이 받아들여야 해요, 감싸주고.
많이 사랑을 받고, 많이 사랑을 주세요.

 

가끔 마음이 일방적으로 느낄 때, 그게 인생이고 삶이라고 생각하면 사랑을 주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숙소 체크인을 하고 돌아와서 본 두 번째 영화는 로우 첸 감독의 <본인 출연, 제리> 였다. 사실 예매하고 포스터 보고 조금 걱정했는데, 사실 중반까지도 그저 그랬는데.. 후반 30분 동안 휘몰아치는 감정 때문에 눈물을 참는 게 힘들었다. (스포주의) 영화를 보며 보이스피싱을 깨닫는 순간 제리가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고, 한평생 타국에서 일하며 돈을 모은 제리가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론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누군가가 지금보다 훨씬 더 진보된 기술로 나를 속이려 든다면 나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부모 세대 뿐 아니라 내 스스로가 걱정되기 시작했던..^^;

 

실화 기반 스릴러(?) 스파이(?) 다큐멘터리이고, 마지막에는 이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까지 와이드 샷으로 담아내서 그런지 영화가 끝나고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걸어 들어오는 주연 배우 겸 이야기의 주인공 제리를 볼 땐 내가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절망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가라앉지 않고 삶을 지속하는 것이 멋있었고, 그 원동력이 영화임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족끼리 영화를 탄생시킨 것이 놀라웠다. (실제로 돈을 전부 잃고 3일 뒤에 다시 일을 시작하셨다고..) 영화 속 가족을 응원하다보니 내 눈 앞의 가족을 진심을 다 해 응원하게 된 순간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프렌치 수프> 였는데... 초반 30분을 졸았다 ㅠㅠㅠㅠㅠㅠ 불가항력이었음... 아직 프랑스 영화는 어려운 것 같다. 저토록 식재료와 맛에 진심인 것도 신기하고.. 나는 불닭에 깨 뿌리고 치즈 올려먹으면 행복한 사람이라.. 언젠간 프랑스 영화도 음미하며 볼 수 있겠지?

 

 

뒤에 계신 분께 사진을 부탁드렸는데 순식간에 뚝딱 잘 찍어주셨다

 

 

 

숙소 바로 앞에 시장이 있어서 잠깐 구경을 했다. 밤 11시 쯤이어서 몇몇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호떡집도 내가 멍 때리며 바라보는 사이에 마감이 됐다 ㅠㅠ 2년 전에 가족이랑 부산 놀러왔을 때 들렀던 호떡집이어서 반가웠다. 혼자 하루 묵을 거라 숙소는 적당히 저렴한 호스텔로 골랐다. 그래도 1인실이어서 쾌적하고 편했다. 누워서 야식 먹고 노트북 두들기다가 잠들었다. 친구랑 왔으면 새벽에 바다 산책 하러 나가거나 밤새 수다를 떨었을텐데 아쉬웠다. 다음 부국제 땐 꼭 동행을 구해야지!

 

 

 

둘째날 느지막히 일어나서 체크아웃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부산으로 온 제일 큰 이유였던 '스시난'...💙  <헤어질 결심>에서 '시마스시'로 나온 곳이다. 원래 식당에서 먹으면 도시락이 아니라 일반 접시에 나오는데, 도시락으로 부탁드리면 영화에서처럼 도시락에 정갈하게 담아서 주신다. 열두시로 예약해서 갔더니 식당 안에 대부분이 영화제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헤어질결심 초밥을 먹으러 온 ㅎㅎ!) 초밥 구성은 매번 조금씩 바뀌는 거 같은데, 다 너무 두툼하고 부드럽고 맛있었다. 특히 참치를 먹을 때 너무 환상적이었다... 고등어도 비리지 않고 맛있었다. 내년에 또 부산을 오게 된다면 무조건 다시 와야지. 다 먹고 나니 조사하려고 불러서 이런 초밥을 사준 해준이 너무 웃기게 느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사랑에 빠진 녀석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뷰를 찾아봤을 땐 도시락에 담아달라고 부탁드리면 4만원이라고 나와있었는데, 인기가 많았는지 가격이 올라 5만원이었다. 그렇지만 후회가 전혀 없는 한 끼였다.

 

 

해준이 서래에게 사준 초밥

 

 

 

점심을 먹고 나서 해운대 영화의 거리에서 잠깐 산책을 했다. 그래도 부산까지 왔으니 바다는 봐야지 싶었다. 사실 둘째날은 바닷가에서 있다가 올라오기로 계획했었는데, 영화제에서 어슬렁거리고 싶어서 잠깐만 있다가 다시 영화제 쪽으로 이동했다. 망원경은 막혀 있을 줄 알았는데 진짜 저 멀리 풍경이 보여서 사진을 찍어봤다.

 

 

 

버스 타고 영화제 쪽으로 왔더니 야외 GV(?)를 진행하고 있었다. 송중기 배우랑 김형서 배우가 보였다. 뱃지를 사고 싶어서 오래 구경하지 않고 후다닥 굿즈를 파는 부스로 이동했다. 제일 사고 싶었던 뱃지는 품절이라 다른 뱃지들을 두 개 샀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GV의 매력을 알게 돼서 '관객과의 대화' 뱃지가 마음에 든다.

 

 

 

영진위에서 배우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같이 찍는 게 아니고 프레임) 있는 부스가 있다고 하길래 가봤다. 사진을 찍으려면 먼저 전시를 봐야 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더라도 전시가 궁금해서 들어가봤을 거 같다. 종로 피카디리도 보이고, 내가 10년 전에 정말 좋아했던 <들개> 포스터도 보였다. 사진은 다 웃기게 나왔지만 ㅋㅋㅋㅋㅋㅋ 찍은 걸로 만족. 기차에 늦을까봐 허겁지겁 달려가서 버스를 탔고, 다시 40분 정도 이동해서 부산역에 도착했다. 역 앞에 어묵 가게가 있어서 어묵을 사서 서울로 올라갔다. 2019년도에 갔던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후로 처음으로 가본 영화제였는데, 너무 좋았다. 부산 자체를 많이 안 가봐서 바람이 살살 부는 길거리를 혼자 걸을 때 기분이 좋았고, 세 편 중 두 편을 만족스럽게 봤고, GV들도 다 뜻깊었다.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더 재밌고 알차게 다녀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