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ted States] New York, Manhattan #1

2023. 10. 10. 18:18Life/United States

개강하기 전 나흘동안 뉴욕 맨하튼에서 시간을 보냈다. 원래는 바로 학교로 갈 예정이었는데, 항공편 일정과 공항에서 학교로 가는 기차 일정으로 인해 혼자 호텔에서 묵어야 하는 시간이 생기는 바람에 일정을 조율하다보니 뜻밖의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사실 이보다 전에 가족과 연말에 뉴욕에 가서 새해를 맞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해외 입국 시 자가격리를 해야하는 정책이 생겨 계획이 무산되었다. 그런데 다시 어쩌다보니 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고, 아직 방학이라 여유로운 친오빠와 둘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새해 첫 날 미국 가는 친구들과 함께


운 좋게도 비슷한 시기에 미국으로 가는 친구가 많았다. 새해 첫 날 작별인사 할 겸 모여서 밥을 먹었다. 한 달에 적어도 두 세 번 만나는 친구들인데 반 년이나 못 본다니.. 사실 이때 나는 교환학생 준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찬 상태였다. 중요한 서류를 빠뜨려서 출국을 못하는 건 아닌지, 학교에 가기도 전에 코로나에 걸려서 자가격리를 하게 되는 건 아닌지, 인종차별을 겪는 건 아닌지 등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공유하며 스트레스를 그나마 덜 수 있었지만, 그렇게 힘들게 준비하고 고대한 교환학생인데, 설레기만 해도 모자른 이 기간에 스트레스를 받는 나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건 학교에 도착하고나면 해결되리라 생각하고 마저 준비를 했다.



싱숭생숭 복잡미묘한 기분을 눌러담고 출발했다


캐리어로는 부족할 거 같아서 이민가방 두 개를 구매했는데, 차라리 짐을 줄이고 캐리어를 사용하면 편했겠다 싶었다. 가방이 자꾸 쓰러져서 들고 다니기가 불편했다. 1월 6일 아침 일찍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정신없이 엄마와 작별했다. 비행기 안에서 엄마가 준 편지를 읽고 울 뻔 했지만... 고작 4개월이다! 난 어디 끌려가는 게 아니다!!! 를 속으로 반복하며 참아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교환을 가고자 마음 먹은 순간도 생각났고, 2021년 여름에 틈틈이 시간 내서 토플 공부를 하던 날들도 생각났고, 시험을 마치고 광화문의 풍경을 바라보며 속시원해 하던 순간도 생각났고, 1차 지원에 떨어져서 캐치카페에서 혼자 우울해하던 순간도 생각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환학생을 준비하며 엄마와 갈등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걱정해서 하는 말들이 나에겐 부담이 되는 때가 많았고, 여러 일을 병행해야 했던 터라 엄마가 걱정하는 요소들을 금방금방 해결하지 못해서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순간들을 뒤로 하고 이제 실전이라니 정말 시간이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설레는 비행기 안


긴 시간 끝에 JFK 공항에 도착했다. 사실 기내에서 wifi를 사용할 수 있어서 가는 길이 많이 지루하진 않았다. (아시아나만 wifi를 제공한다고 한다. 물론 유료이다.) 앉아서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라 굉장히 피곤하긴 했다. 그치만 작년 한 해를 함께한 지인들로부터 잘 다녀오라는 따뜻한 연락을 여럿 받기도 했고 드디어 문제 없이 가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마음이 편안했다.



점점 눈에 들어오는 뉴욕의 풍경


짐을 픽업하고나서 원래 한인택시를 타고 맨하튼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내가 실수로 다른 날로 예약하는 바람에 공항에 대기하고 있는 일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ㅠㅠ 다행히 친절한 기사분을 만나 호텔 앞까지 잘 이동할 수 있었다. 시작부터 문제가 발생해서 조금 울적했지만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뉴욕의 풍경에 곧 행복해졌다. 늘 뉴욕에 가고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내가 지금 뉴욕에 있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영화를 홍보하는 뉴욕 택시




Burger Joint

 

숙소에 짐을 풀고 숙소 근처에 있는 Burger Joint에서 점심을 먹었다. 들어가자마자 킬빌 포스터와 어벤져스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가 걱정돼서 테이크아웃을 할 생각이었지만 마땅히 먹을 장소도 없고, 먹고나서 바로 은행에 가야 했어서 안에서 후다닥 먹고 나왔다. 평범한 햄버거와 감자튀김 맛이었다. 한국에 있는 수제버거집이 더 맛있는 거 같기도! 나는 맛보지 않았지만 밀크 쉐이크가 맛있다고 했다.



Bank of America


숙소 옆에 있는 Bank of America가 문을 닫아서 다른 지점을 찾아갔다. 갓 미국에 온 유학생 티가 팍팍 났는지 현지인과 대화할 땐 거의 랩을 하시던 직원분께서 내게는 정말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물론 나는 비행기에서 한숨도 못 자서 기절 직전이었어서 반의 반 정도만 알아들은 것 같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만드는 checking account가 세 종류가 있는데, 나는 그중 수수료가 가장 적은 유형을 선택했다. 실물카드는 주소를 작성하면 5~7일 뒤에 도착한다고 해 기숙사 주소를 적었다. 기숙사 주소가 정확하지 않아서 나중에 전화 문의를 통해 새 카드를 배달받았다. 그래도 당시에는 나 혼자서 미국 은행에 가서 계좌를 발급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뿌듯했다.



지하철과 신호등. 지하철은 너무 위험해서 여행 내내 우버만 이용했다.




걸어도 걸어도 사라지지 않는, 너무나도 뉴욕다운 풍경




Rockefeller Center Christmas Tree


계좌를 개설한 뒤 숙소로 돌아와서 기절잠을 잤다.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오빠가 정 안되겠으면 Rockefeller Center 전망대 가지말고 한식이나 배달시켜먹자고 했는데, 막상 자고 일어나니 아쉬워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숙소에서 3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드라마에서 본 Rockefeller Center 앞 거대한 트리가 내 눈 앞에 있어서 신기했다. 아래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고 우리처럼 트리를 구경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진을 부탁한 사람도 있었는데, 한국인의 혼을 담아 사진을 찍어드렸다. 이때가 한참 씽2 영화 개봉했을 때여서 건물 곳곳에 씽 캐릭터들이 붙어있었다. 한국에서 보고 오고 싶었는데... (미련)



오빠랑 나




Rockefeller Center


Rockefeller Center 전망대에 올라서 바라본 뉴욕의 빌딩숲. 벌써 이때 느낀 감동이 옅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한 건물들에 감탄했고, 이렇게나 건물이 많은데 미래의 내 자리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용감한 생각도 잠시 했다ㅋㅋ. 엄마께도 야경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영상통화를 했는데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아서 제대로 보여드리지는 못했다. Empire State Building과 사진에는 없지만 Chrysler Building이 너무 아름다웠다. 노을 질 때 왔어도 정말 아름다웠을 것 같다. 언젠가 다시 해질녘에 오는 걸로!



할리우드 배우 좋아하면 모를 수 없는 지미팰런쇼. 이것 역시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Time Square


전망대에서 나와서 Time Square로 향했다. 여행 첫째날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화려한 전광판 속에서 쨍한 색감의 m&m 캐릭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의 새 시즌을 홍보하는 전광판도 많았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건물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인파 속 낯선 얼굴들을 마주하며 이곳에선 내가 이방인임을 실감했다. 다음날 역시 아침 일찍 일정이 계획되어 있어서 오랜 시간 머무르지는 못했지만, 피곤한 것도 잊어버릴만큼 정말 행복했다. 평생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뉴욕 여행 첫날은 이렇게 저물었다.